2008년 3월 17일 월요일

목적의 상실, 컨퍼런스를 위한 컨퍼런스.

많은 분들이 올려주신 후기글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저도 어제 블로거 컨퍼런스에 다녀왔는데요. 좋았던 점보다는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과 이해안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았던 행사였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네티즌' 처럼 불특정다수를 계급화시키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TV에서 연예버라이어티쇼 등을 보다보면 네티즌이 무섭다는 둥, 뉴스에서도 네티즌이 저랬다는 둥 떠들어 대지만 네티즌은 특정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네티즌이 무섭다고 떠드는 문희준도 네이버에서 자신의 리플을 읽고 있는 순간은 네티즌의 한사람이며, 네티즌이 이러면 안되네, 하면서 운운하는 사람도 본인의 이메일 계정을 읽고 있는 순간 네티즌의 한사람인 것이니까요. (물론 최근에 네티즌이라는 단어가 '네이버에 악플 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꼈다면 또 다른 얘기지만 말이죠;)

하지만 '블로거'라는 이름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로거'는 블로그를 가지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컨텐츠를 생산하고 다른 블로거들과 교류하는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블로거 컨퍼런스'라는 행사에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참여하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이, 블로거 컨퍼런스에 '블로거'는 없었습니다. 9시부터 5시반까지 앉아있는 내내, 블로거라는 나 자신조차 어디서 표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더군요. 블로거의 한사람으로써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기 보다는 'DSLR 추첨 언제 하나..' 이 생각만 하고 있는 한 속물 근성의 인간만이 시간을 축내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주최하신 네이버와 다음의 관계자분들이 6개월간 준비 하셨다며, 다음에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씀하셨지만, 매우 부정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6개월간 뭘 하신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 준비한 행사라고 보기엔 행사 진행이 너무나도 허술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관료가 가장 비싼곳 중에 한 군데에서 행사가 진행됐다는 점만 제외하면, 행사 자체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이었습니다.


일단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습니다. 많은 세션을 준비해서 사람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한 것은 좋았습니다만, 너무나 많은 세션들로 인해 어떤 한 세션이라도 충실히 진행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오후 첫시간에는 박범신님과 한비야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두분다 강연 시간이 40분밖에 되지 않아(한비야님은 10분의 비디오 상영을 제외하면 30분 뿐이었고 말이죠.)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많으신듯 하였지만 중간에 강단을 내려가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이 '블로거와 대체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들에게 강연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충분히 블로거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여러가지 말씀을 해주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소설 연재를 마치신 박범신 선생님이 아마 인터넷에서 글쓰기에 대해서 좀 더 심도깊은 말씀을 해주셨다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버거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가이드 라인을 보여주실 수 있으셨을 듯 합니다.

한비야님의 강연은 사실 저서인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많은 블로거 분들이 함께 듣고 블로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내용을 전파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또 요즘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계시는 분들도 세계로 사랑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나름 행사에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두분 모두 좀 더 시간을 갖고 많은 말씀을 해주시고 싶으신 눈치였지만, 주최측의 Time up 사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강단을 내려가야만 하셨습니다. 계속 시간에 대한 언급을 하시는 것이 매우 안타깝더군요.


이런 안타까움은 일반 블로거 분들의 스피치 시간에도 똑같이 이어졌습니다. 아니, 이분들은 더 하면 더 했죠. 유명 초청 인사분들에게 40분씩 주어진 시간은 파워블로거 분들에게는 단 20분씩만 주어졌습니다.

학교나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보신 분들은 이 20분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잘 아실겁니다. 물론 발표가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20분안에 모든 것을 끝마쳐야 하는 블로거 분들은 발표 내내 100m 달리기를 하는듯한 속도로 쉴새 없이 말을 쏟아내었고, 질문과 답변 시간은 전혀 가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만님'의 시간을 매우 기대했는데 20분 만으로도 알찬 발표를 해주셔서 범상치 않은 내공을 느끼긴 했지만, 발표가 끝나고서는 허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보고 있는 제가 다 숨이 차더군요. 모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말씀들이었지만, 다 듣고 나니 사실 머리가 멍-한 느낌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숨막히게 달려 숨을 헐떡이며 가야금 연주단과 비보이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정부에서 주최하는 공연이면 꼭 빠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공연은 즐길만 하지만,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 사람들이 여기 와서 쇼를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9시간 동안 숨차게 달려왔으니 잠깐 노고를 치하하겠다는 건가요?

의미없는 공연이 끝나고 경품 추첨 시간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이죠. 너무 속물근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블로거라고 해서 특별히 고고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밌고, 재미없고, 의미가 있고, 없고에 대해서 더 까다롭고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행사 자체의 몰입도가 상당히 떨어지다보니 다들 목적이 '에라~ 경품이나 타가자~'로 자연스레 전환되어버린겁니다.


뭐, 어쨌든 결과물은 처음 등록할때 받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반 빈손으로 돌아오긴 했습니다만. 제가 블로거 컨퍼런스에 대해서 악평을 쏟아내고 있음은, 그 이유는 아닙니다. ^^;;


앞에서 각 강연 인사들의 부족한 시간 분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행사는 목적이 부실했습니다.

2천명 되는 블로거를 한자리에 모으자.

그것뿐이었습니다. "모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블로거란 누구인가?"에 대한 명제 자체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듯 했습니다. 그나마 블로거 사랑방이나 블로거 찾기(?) 등은 나름 기획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기획 의도를 100% 반영하기에는 방법론이 너무 빈약했습니다. 금방 급조된 듯한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행사 진행도 전반적으로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열리는 컨퍼런스여서 그랬다고 변명하기에는, 주최하는 회사가 너무 컸습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고, 각 세션의 강연장에서는 강연이 시작되어도 들락날락 하는 사람들로 그 짧은 시간동안 집중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행사를 리드하시던 사회자분도 관계자 분이 하시기 보다는 전문 사회자 분이 하시는 것이 더 매끄러운 진행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어느정도 블로그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으신 분이여야 하겠지만 말이죠.


물론 (원래 계획상) 2천명의 블로거가 한자리에 모여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하는 컨퍼런스를 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블로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블로거다운' 컨퍼런스를 만들수 있을까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수반되었어야 된다고 봅니다만. 이번 블로거 컨퍼런스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블로거라는 이름을 걸고 컨퍼런스를 한번 하긴 해야겠는데...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컨퍼런스를 위한 컨퍼런스'라는 느낌만 남아버렸습니다.  블로거 컨퍼런스에 블로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거 컨퍼런스의 미래는 별로 밝지 않은것 같습니다.


댓글 8개:

  1. 저는 일요일이라서 신청도 안했는데... 괜찮은 판단이었나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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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가지 못해서 참 아쉬웠는데, 글을 읽어보니 감이 행사장 분위기가 감이 오는군요.

    그래도 저는 참석하지 못한게 못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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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데굴대굴 - 2008/03/17 10:40
    뭐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긴 한것 같은데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뭐 오전이나 오후만 허비했으면 모를까, 하루를 꼬박 바쳤는데 별로 건진게 없어서 매우 허무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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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로거 - 2008/03/17 10:41
    2회가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그때 참석해보세요~* ㅎㅎ

    그때는 좀 더 나은 행사가 되길 빌어봅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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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wow~~~다녀오셨군요...

    저도 갔는데 cherry양님을 함 찾아볼껄 그랬네요...ㅎㅎ

    실은 너무 피곤해서 중간에 돌아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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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trackback from: 080316 SUN - 대한민국 블로거 컨퍼런스
    전날 기나긴 여정 탓인지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물론 휴일이라서 그랬겠지.... 눈을 떠 보니 10시....... 아차...오늘 대한민국 블로거 컨퍼런스 하는 날인데... 9시부터 10시까지 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행사는 10시부터...근데 난 10시에 일어났다... 가지말까?? 함 가볼까??? 결국, 버스로 온수역까지, 온수역에서 7호선을 타고 고속터미널까지 ... 가버렸다.... 다행히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쿠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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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donjuan - 2008/03/17 22:04
    저도 사실 중간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요.

    가서 우연찮게 친구를 만난것도 있고 DSLR 때문에 끝까지 있었네요. 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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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trackback from: 블로거(그)에게 비판적 사고는 생명이다!
    블로거(그)에게 비판적 사고는 생명이다! '긍정의 힘'을 부정한다! 국내에서도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사회적으로 '긍정'의 열풍을 이끄는데 한몫한, 조엘 오스틴의 책 <긍정의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면 누구나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한다고 한다. 저자는 매주 3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교회의 목사라고 하며, <긍정의 힘> 시리즈를 출간했다 한다. 암튼 그의 '긍정 시리즈'들은 한마디로, 개인의 성공과 행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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